Killer Cross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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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는 말. 일상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지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는 여자한테는 져도 되지만 남자한테 지면 쪽팔리지 않니 라는 말씀을 웃으며 하셨고 나는 동의했다. 중1 때 생애 처음으로 어떤 남자아이 보다 시험을 못봤었다. 그 친구는 잘생기기도 인기가 많기도, 게다가 착하기까지 했다. 참을 수가 없어서 매일같이 잠없이 공부를 했기 때문에 다시 자리를 찾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도 쿨한 척 하느라 가식만빵의 표정으로 살아가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키도 안컸고.

그러다가 농구가 좋아지고 축구가 좋아지고 이쁜 여자애들도 보이고 애들과 노는 게 좋아지고 PC방이 생기고 스타가 들어오면서 이렇게 누군가를 '이길려고만' 사는 것이 얼마니 피곤하고 서글픈 일인지를 알게 될 때 쯤, 그러니까 나에게도 제대로 된 '친구' 라는 것이 생겨 삶이란 게 독고다이로 나만 잘나봤자 욕만 먹고 외롭겠구나 따위의 진실을 전부라 믿을 때 쯤이었나 어울리게 된 친구가 있다.

주관이 뚜렷한 놈이었는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 친구를 뒤쫓아만 왔다. 독기가 빠진 상태에서의 승부라 뻔한 것일 수도 있었겠으나 그래도 당시에는 지기 싫었다. 맨날맨날 붙어다니면서 공부하고 밥 먹고 놀고 또 공부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함께 생활을 하면서 바라 본 이 친구의 진가란 경이로운 것이었다. 불과 열 다섯인데도 불구하고 이놈이 보여주는 자기 절제는 그 당시 하늘 같았던 많은 어른들에 비추어도 크게 뒤질 것이 없었다. 모두가 공공연히 행하는 학창시절의 치기 어린 무언가에도 제법 단호한 기준으로 대했다. 좋은 결과물(성적)이란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다. 이를테면 존경과 같은 것이었다.

학창 시절의 성패가 대학의 간판으로 갈리는 엿같은 현실이긴 하지만 또 그것이 현실이라 수긍해야 한다는 관점을 견지하면 이 친구는 성공했다. 누군가에게 내가 본 사람 중에 아주 열심이고 중심이 뚜렷하여 성공할 수밖에 없는 예시를 제공해야 하면 나는 주저없이 이 친구를 선택했다.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그가 등장했을 때에도 '걘 뭘해도 잘할 놈이지' 라는 생각만 했다.

제법 시간이 흘러 우리는 예전처럼 매일 만나지도 붙어다니지도 못하고 서로의 인생에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중요한 부분을 채우면서 '어린 시절의 좋은 추억을 나눈 친구' 란 카테고리에 각자를 묻었다. 살갑지 못하기는 저나 나나 도찐개찐이라 어쩌나 만나는 날에도 서로 그 때 마냥 놀리고 디스하기 바빴으나, 그리고 그것의 소중함을 알았으나, 그마저도 바쁨을 핑계로 점점 아스라져갔다. 바쁘고 쿨한 현대인이라 서로간의 연락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여유가 생겨 문득 생각이 나는 사람들을 보고자 하니 내 삶에 존경하기 싫었으나 존경했고 도움받지 않으려 했으나 도움을 받았던, 엄마들에겐 롤모델과 같았던 이 친구에게도 신경이 미쳤다. 그래서 바뀐 것도 모르고 있던 번호를 알아내어 연락을 했건만 이 뒤늦은 시기에, 다음주에 군대를 가기로 정했다고 한다. 우쓰야 복학해서는 열심히 하라고 10년 전에는 지겹도록 봤었다며 조만간 또 보자고 한다. 그 조만간이 언제가 될 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너는 선택하면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뜬금없지만 제멋대로고 그럼에도 의지를 관철시켰던 너를 응원한다.
고생의 무게가 너를 짓눌러 '아 존나 엿같은 생활이다' 와 같은 말이 나와도 그 이후의 찬란한 너를 믿는다고, 그 땐 어려서 니 등만 바라보는 게 싫었으나 쫓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해주어 고맙다고 전한다.         


덧글

  • 소희 2010/01/24 19:01 # 삭제 답글

    응원해주고 존경해주고 마음으로 옆에 있어주는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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